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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WEBZINE 2013.SPRING

국민연금을 말한다

희망의 샘물(최미연(가명) / 대구시 달성군 국민연금 수급자 생활수기 수상작) “ 불편한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비록 한 쪽 눈을 보지 못하고 판단력과 기억력이 안개 낀 날씨처럼 흐려져 있고 거동이 불편해도 한 발자국씩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의 눈길로 쳐다 볼 때도 있지만 오히려 당당해 지려고 노력합니다.”

이른 새벽길 남편을 부축하며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은 얼마나 부드럽고 상쾌한지 천천히 느림보 거북이처럼 걷노라면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꽃은 어쩜 그리도 소담스럽고 예쁘게 보이는지요.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은 까치들의 경쾌한 노래 소리 자연의 숨결과 더불어 생물의 신비함을 느껴봅니다. 불편한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비록 한 쪽 눈을 보지 못하고 판단력과 기억력이 안개 낀 날씨처럼 흐려져 있고 거동이 불편해도 한 발자국씩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의 눈길로 쳐다 볼 때도 있지만 오히려 당당해 지려고 노력합니다. 사회는 잘난 사람들끼리만 사는 곳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남편은 쓰레기 종량제 실시 이후, 재활용 운전원이었고 건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국민연금 가입자였습니다. 급여에서 공제되던 국민연금이 훗날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물이 될 줄은 그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내 삶의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1998년 6월 25일 밤. 소낙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 걱정하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기 OOO 병원인데요, 전OO씨 들어오셨습니까? 교통사고 환자 확인을 해야 하니 빨리 와주십시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우산을 쓸 겨를도 없이 잠든 어린아이들을 두고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침에 분명 웃으면서 출근했던 사람이었는데 머리를 많이 다쳐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숨 쉬는 것 조차 산소호흡기가 대신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뜨거운 눈물을 얼마나 쏟아 부었는지 운명의 장난일지라도 너무 가혹했습니다. 현실이 아니기를, 내일 아침 일어나면 이 모든 것들이 그저 꿈이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것은 기막힌 현실이었습니다. 그 날 밤 남편은 회식을 하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은 중학생이었고, 딸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1년 반동안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장애인이란 어색한 이름표. 한 쪽을 보지 못하고 보행이 불편한 사람을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부축하여 병원을 다녔습니다. 저는 남편을 대신하여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일을 하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저를 붙잡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더군요. 딸아이와 함께 병원을 가는 도중 갑자기 딸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남편 앞에 놓여 있던 돌을 발로 치우더랍니다. 혹시나 그 돌 때문에 아빠가 넘어질까봐 염려스러워 그랬던 거죠. 세상 물정 모르고 구김살 없이 자라야 할 아이들이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 미안하고 애잔했습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 장애연금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민연금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국민연금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습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 장애연금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민연금을 생각하면 그저 미안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어느 부모 형제가 우리에게 매달 그렇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요? 사고가 난 그 때,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국민연금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습니다.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훌쩍 지나서 어리고 작게만 생각했던 아들과 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공부만 하던 딸이 인턴교사로 근무하고 나서 1달여 지난 후, 첫 월급을 타고 나서 한 말이 “엄마, 나도 국민연금 가입자야”라고 자랑하며 웃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먹먹하고 코끝이 찡해오던지요. 나라가 너희들을 키웠으니 너희들도 국민연금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된다고 당부했지요.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저는 실제로 겪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국민연금이 꼭 필요합니다. 매월 월급처럼 꼬박꼬박 들어오는 장애연금 40만원. 그건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삶의 희망이었고 따뜻한 사랑이었으며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물이었습니다.

국민연금 장애연금 - 국민연금 가입 중 발생한 질병, 부상으로 인하여 치료가 끝난 후에도 신체적, 정신적장애가 남았을 때 장애정도(1급~4급)에 따라 일정한 장애연금을 지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