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마음의 풍경 - 송재하
농촌 5일장의 봄나물
농촌 5일장에 갔다. 그곳에는 벌써 봄이 완연하다. 시골 할머니들이 들판에서 캐온 봄나물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었다.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품고 돋아난 이 새싹들은 그 자체만으로 보약이다. 어떤 봄나물은 상큼한 맛으로 또 어떤 봄나물은 쓴맛으로, 단맛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게다가 같은 종류라도 다른 계절에 먹던 것과는 또 다른 향과 맛을 느끼게 한다. 본래 쌉싸래한 씀바귀나 쑥도 봄에는 특유의 은은한 향내음이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준다. 노릇노릇한 움파는 또 어떤가. 파의 톡 쏘는 맛 대신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다. 어릴적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다진 움파에 참기름 넣은 양념간장이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웠던 생각이 났다. 냉이는 농촌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느데 양지바른 밭이나 밭두렁에서 많이 나다. "냉이는 입춘이 지나고 한 달 동안이 제일 맛이 없다"고 할머니들이 알려 주셧다. 또 "달래는 한 곳에 무리지어 무더기로 자란다. 씀바귀는 논두렁 밭두렁이나 양지바른 산비탈에서 많이 난다"고 하셨다. 할머니 난전에서 구입한 달래나 냉이는 국을 끓이거나 무쳐서 먹으니 상큼한 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에 우러나는 냉이향은 일품이다. 씀바귀는 뜨거운 물에 데친 뒤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고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으면 겨우내 떨어졌던 입맛이 확 돌아온다. 노르스름하면서도 푸른빛이 짙은 봄동 겉절이도 맛있다. 다른 계절의 배추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그곳에 가면 봄나물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봄나물을 파시는 할머니들이 친절하게 봄나물마다 요리법을 자세하게 알려 주신다. 수십년의 할머니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노지에서 자란 시금치도 봄의 초입에 최고의 맛을 낸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명한 풀빛으로 봄을 찜하는 미나리다. 강렬한 초롯빛을 발하며 몸체 가득 물이 올라 있다. 싱그러운 풋내가 그리운 겨울 끝 무렵이라 그런지 싱싱한 향채의 미나리는 더욱 유혹적이다. 봄나물 파시는 할머니가 손수 담은 된장을 가져와서 찍어 주시는 미나리는 한 입 씹었을 때 사박거리는 식감이 너무 좋다. 입안 가득 스며 나오는 상큼한 육즙,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특유의 향도 일품이다. 육류는 물론 생선, 수육 등의 요리와 궁합이 척척 잘 맞는다. 생채로 먹어도 좋고 구운 삼겹살을 미나리 쌈에 싸서 먹으면 그만이다. 뿐만 아니라 인심도 후하다. "내가 직접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캔 봄나물이다. 많이 먹으면 몸에 좋다."면서 덤으로 한 웅큼 듬뿍 집어 주시면서 먹는 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시는 할머니의 말씀 구구절절 정감이 뚝뚝 묻어난다. 농촌 5일장의 봄나물은 농촌 땅에서 자생한 것인데다 할머니들이 손수 채취한 것이라 그런지 너무 신선하고 맛있으며 여간 정겨운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봄나물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생동감 넘치게 했다.

할머니의 꽃길 - 김한나
살고 있는 인근 가파른 언덕배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꽃길이 펼쳐진다. 왼쪽으로 난 길이 깎아지듯 위태로워서 언제부터인가 난간을 대어 놓았고, 그 난간을 따라 언덕이 끝나는 곳까지 벽돌을 쌓아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봄이 오기 달포 전이면 그 꽃밭에 거름을 뿌려 놓고 흙을 일구어 놓으시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일흔을 훌쩍 넘기셨음직한 할머니는 그 꽃길을 따라 연둣빛 꽃모종을 심으시며 행여나 그 꽃모종이 시들어 버릴까봐 정성스레 물을 주신다. 꽃모종만큼이나 한업이 싱그러워 보이는 할머니의 밝은 미소가 정겨운 꽃모종 이름이 뭐냐고 살포시 물었다. '해발기라우~'하시며 할머니께서는 새싹이 얼마쯤 땅에 뿌리를 내리면 그 사이사이로 금잔화와 장미도 심으실 거라고 하셨다. "많고 많은 꽃모종 중에 왜 하필 해바라기를 심으셨어요?"넌지시 묻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오고가는 사람들의 믿음이 이 해바라기처럼 한결같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 할머니의 바람대로 해바라기 꽃씨가 꽃망울을 터뜨려 꽃길을 지나는 저마다의 마음속에 알싸한 향기로 퍼지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봄은 두 근 반 세근 반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렇듯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속 바람이 꽃바람을 타고 이 꽃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번져 저마다의 마음속에 든든히 이 꽃길의 의미가 전해진다면 꽃밭을 가꾸시는 할머니의 담방울이 헛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기심이 자라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다사로운 꽃향기를 전하고 싶어, 이웃을 위해 주머니의 쌈짓돈을 털어 꽃밭을 가꾸시는 할머니의 노고는 덤덤한 일상 속에 잔잔한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아무쪼록 할머니의 꽃길에 하늘의 단비가 내려 보는 이들 모두의 가슴에 촉촉이 온기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