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편안히 잘 주무셨어요?”
한의원에 찾아오는 모든 어르신께 제일 먼저 드리는 인사말이다. 불면증이나 수면장애 때문에 내원하는 분이 아니더라도 치료에 있어서 ‘잠을 잘 자는 것’은 곧 좋은 예후를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분들을 진찰하다 보면 차트에 기록된 나이에 비해 유독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 있다. 피부가 윤기없이 거칠고 칙칙하며 안색도 어둡고, 흐릿한 초점에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이런 경우 대화를 나눠보면 대부분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분들은 치료할 질환이 무엇이든 간에 잠을 잘 주무시는 분들에 비해 회복이 더디며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치료 중 수면상태가 개선되면서 전체적인 컨디션은 물론, 주된 증상까지 좋아지는 분들이 있다. 건강한 수면이 치료를 도운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잠은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사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우리 인생의 1/3을 잠을 자면서 보낸다고 한다. 우리 몸은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도록 설계가 되어 있을까?
1962년 미국에 사는 랜디 가드너라는 사람은 11일간 자발적으로 잠자기를 거부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11일 동안 그는 어떤 신체적인 변화들을 겪었을까? 당연히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고 한다. 거기다 집중력, 기억력, 판단력 저하와 같이 뇌기능이 떨어지고 감정적으로 쉽게 화를 냈다. 또한 우울증, 피해망상, 편집증, 환청, 환시, 정신분열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도 보였다고 한다. 발음이 불분명해지고, 시력 저하에 근육경련, 심장문제도 발생했다.
랜디 가드너가 보여준 신체적인 변화 외에도 우리 몸은 며칠간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면역체계가 무너져 각종 질병에 노출되게 되고, 전반적인 대사기능도 떨어져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뇌졸중 등 만성질환의 발생율이 높아지게 되는 등 삶의 질이 급격하게 무너지게 된다.
잠은 단순한 휴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날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작업이며, 낮동안의 활동으로 생긴 노폐물을 처리하고 제거하는 공정이다. 뿐만 아니라 꿈을 꾸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 스트레스 완화의 효과도 있다. 또한 잠이 뇌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수면무호흡증을 통해 수면과 노화의 상관관계가 밝혀지기도 했다. 불안정한 수면상태가 지속되면 노화가 가속화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건강하고 좋은 잠은 노화를 방지한다. 이정도면 우리 인생의 1/3을 잠에 투자할 만 한 것 같지 않나?
건강한 수면이란?
‘건강한 수면’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평소 ‘잠을 잘 잤다’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자. 단순히 수면 시간이 길 때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기상시의 만족감, 몸이 개운하고 가뿐한 상태에서 우리는 ‘잘 잤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자도, 자고 또 자도 피곤하다는 분들도 있고, 본인은 평생 하루 네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지만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분들도 있다. 즉 건강한 수면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수면의 질과 개인의 만족도라고 볼 수 있다.
일시적인 수면장애와 불면증
요즈음 과도한 스트레스로 수면 장애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스트레스,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과 자녀들을 다 떠나보내고 남겨진 외로움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일시적인 수면장애가 반복 되면 낮 동안의 활동이 지장을 받게 된다. 이럴 때 수면에 대한 강박에 빠지기 쉽다. ‘몇 시까지는 꼭 자야 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정해놓은 시간이 지나면 다음날이 걱정되면서 초조하고 불안해 진다. 불면증은 이러한 불안감에서 시작되고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를 불안감으로 잘못 보내게 되면 이후 만성불면증으로 진행된다. 그러면 치료는 더욱 어려워지고 나중에는 약물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 일시적인 수면장애에서 만성 불면증으로 진행되는 과도기에는 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잠에 관대해지자
잠에 대해 관대해지는 첫 걸음은 수면시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수면시간이 있다. 조금만 자도 다음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니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누구든 일시적인 수면장애는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일시적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잠깐 있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므로 ‘앞으로 계속 이렇게 잠을 못자는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스스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숙면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졸리지 않을 때는 눕지 않으며 평소에도 누워있는 시간을 줄이고 조금씩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자. 잠자리는 잠자는 공간으로만 사용해야한다. TV, 노트북, 스마트폰은 잠깐 멀리해보자. 그리고 잠들기 전 3시간 내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야한다. 잠자기도 바쁜데 소화까지 시키려니 다음날 더욱 피곤할 수밖에.
노년기 수면 변화에 대한 이해
노년기 수면패턴의 변화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노화에 따른 수면의 양과 질의 변화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이다. 우선, 뇌하수체의 노화현상으로 잠에 드는 시간과 깨는 시간이 젊은 층에 비해 빨라진다. 그래서 ‘초저녁에 깜빡 졸아요.’ ‘드라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질 때가 있다니까요’ 이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누워서 잠에 들기까지의 시간도 길어진다. 잠이 얕아지며 수면의 질도 저하된다. 이러한 노년기 수면패턴의 변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아무런 질환이 없는 어르신분들 역시 이 같은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잠에 대해 자의로든 타의로든 인색한 부분이 있다. 앞서 언급한 수면의 효과들을 생각하면서 ‘건강한 수면’에 투자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 진부하지만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요즘 TV 건강 상식 프로그램들을 보고 어떤 음식이나 약초가 몸에 좋은지 물어보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먹어서 챙기는 건강만큼 ‘좋은 잠’으로 챙기는 건강도 중요하다. 어차피 우리 몸은 인생의 1/3을 잠에 투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두들 성공적인 투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건강한 100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들 안녕히 주무세요.
손정현 한의사 _ 김포경희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