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 증가로 은퇴 후의 삶이 예전보다 훨씬 길어졌다. 이 긴 시간 어떻게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깊은 염려에 빠진 이들을 향해 “은퇴 후에 제대로 살려면 적어도 10억 원이 필요하다”는 등으로 겁을 잔뜩 주는 사람들도 있다. 고령화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은퇴 공포증’에 빠져 있는 듯하다.은퇴 후 생계 문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데다 그만큼 관심을 보이는 이 또한 많다. 이런 중요한 사안이라면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다양해진다.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 은퇴 후에도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해결책을 내놓곤 한다.
국민연금은 은퇴설계의 출발이자 기반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이런 방안들에 ‘국민연금’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아예 빠져 있는 것이다. 물론 금융회사들도 공식적으로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다층 연금 구조를 통한 노후 생활 보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느낌이 좀 다르다. 노후 생활을 위한 금융상품 설계 시 국민연금의 가치를 미미하게 보는 편이다. 그들의 논리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국민연금이 은퇴 후 생계를 꾸리기에 충분한 금액이 되지는 못한다. 은퇴 전 수입의 몇 퍼센트를 연금으로 받느냐를 의미하는 ‘소득대체율’이 40퍼센트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다면 이 비율은 훨씬 더 떨어진다. 국민연금이 노후 생활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 정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이는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국민 개개인 역시 연금 보험료와 세금이 늘어나는 부담을 받아들여야 한다. 녹록하지 않은 현실의 딜레마다.
국민연금 설계가 ‘적게 내고, 많이 받고, 일찍 타는’ 구조에서 점차 ‘좀 더 내고, 좀 덜 받고, 좀 늦게 타는’ 구조로 바뀐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불만과 불신도 조성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국민연금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 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현실적 부족함에도 국민연금은 여전히 은퇴설계의 출발이요 기반이 되는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강의나 방송, 상담을 할 때면 늘 ‘국민연금 기반의 은퇴 재무설계’를 주장해왔다. 이는 세 개의 문장으로 압축되는 매우 단순한 논리다. “국민연금을 최대한 활용하라. 퇴직금을 연금화하라. 10년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개인연금을 운용하라.”가 그것이다. 특히 이 지면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국민연금을 최대한 잘 이용하기를 권한다. 그러면 국민연금은 자신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며 은퇴설계의 소중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국민연금 100% 활용하기
의무적으로 내고 때가 되면 나오는 국민연금을 잘 활용하라고 하니 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함 속에서도 효과적인 운용법을 찾을 수 있다. 나는 3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국민연금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바꿔 말해 애써 피하려 하지 말자는 의미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 중에는 소득을 줄여서 말하며 국민연금 납부를 하지 않거나 납부금액을 줄이려는 분들이 있다. 또 직장을 옮기는 공백기 동안에는 웬만하면 국민연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 눈 앞의 부담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 제대로 된 잇속 챙기기가 아니다. 지금 적은 돈을 내지 않은 것이 미래에는 큰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능한 한 국민연금을 더 낼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임의가입’ 제도를 이용하면 이것이 가능하다. 은퇴설계는 부부 중심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령 남편이 직장 가입자로 국민연금을 내고 있고 전업주부인 아내가 있다면 아내가 국민연금 임의가입을 하는 게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다. 연금의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민간 개인연금은 그다음 고려 사항이다. 이때는 국민연금 임의가입부터 챙기고 그래도 여력이 있다면 민간 개인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다. 그리고 최대한 늦게까지 내는 게 연금 수령액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연금 가입 대상에서 빠지는 만 60세 이후에도 경제 활동을 하거나 수입이 있다면 ‘임의계속가입’을 하는 게 좋다.
셋째는 국민연금을 통해 자녀가 일찍부터 은퇴설계를 하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한 젊은 나이에 벌써 노후를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다.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천천히 한다면 오히려 노후 걱정에서 벗어나 청춘을 즐길 수 있다. 이 또한 국민연금 임의가입을 통해 할 수 있다. 만 18세 이상이면 임의가입을 할 수 있기에 젊은 자녀가 용돈을 아껴 적은 금액이나마 국민연금을 넣도록 유도하는 게 효과적이다. 수익성도 좋거니와 가입 기간이 늘어나기에 훨씬 유리하다.
얼마 전, 한 가족을 만난 적이 있다. 직장인인 54세의 남편, 전업주부인 52세의 아내, 대학생인 21세의 딸과 19세의 아들이 그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국민연금 가족’이라고 했다. 남편은 25년째 국민연금을 내고 있고 퇴직 때까지 6년뿐 아니라 그 후 경제활동을 하면 임의계속가입을 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5년째 국민연금 임의가입을 하고 있는데 최대한도의 금액을 선택했다. 65세 이후 두 사람의 국민연금 수령액을 합쳐보니 노후생활자금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꽤 의미 있는 금액이었다. 여기에 남편의 퇴직연금을 합치니 금액이 훨씬 더 늘어났다. 대학생인 두 자녀가 용돈을 쪼개 최소한도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을 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40년을 꽉 채우겠다고 했다.
이들 가족처럼 국민연금을 최대한 잘 이용하기를 권한다. 그러면 국민연금은 자신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며 은퇴설계의 소중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권도형 대표 _ 한국은퇴설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