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5회 우수상)업둥이가 효자 될 줄이야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283
내용
제5회 우수상
업둥이가 효자 될 줄이야!

정성희/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학창시절엔 운동선수를 할 정도로 건강한 체력과 매사에 성실했던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기 10개월 전쯤 전부터 몸이 피곤하고 쥐가 자주 난다며 힘들어했으나,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탓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내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던 남편이 얼굴 색이 노랗게 변하며 구토를 하여 인근 병원응급실로 급히 옮겨 입원을 하였고 얼마나 지났을까?

담당의사 선생님의 검사결과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성신부전증입니다. 신장이식수술을 하거나 평생 투석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우리가정에 더욱이 한참 열심히 일하며 어린 아들 재롱에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우리가정의 기둥인 남편이 만성신부전증 환자라는 사실을 차라리 난 믿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건강했던 사람이었고 그보다 더 기막혔던 것은 한참 힘을 쏟으며 살아가야 하는 남편의 나이 서른두살! 난 이제 어떡해야 하지? 우리 애기아빠가 불쌍해서 어떡하지? 순간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쓸쓸하고 더욱 가슴이 아팠다. 처음부터 남편은 신장이식수술을 원치 않았다. 수술비도 엄두가 나지 않았겠지만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장이식수술을 하면 투석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없는 살림이지만 남편을 위해 꼭 수술을 해주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2주쯤 지나 시누이 내외가 병문안을 왔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신장 구했어요? 얼마면 산 대요?"라는 첫마디에 난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신장이식 수술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먼저 말을 꺼냈더라면 시누이 내외가 부담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편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됐다. 난 시누이 내외가 10여분 앉아있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실 문을 나서며 당첨되면 병원비로 쓰라며 복권10장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복권첫째 장!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난 울면서 복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찢겨진 복권이 마치 위태로운 우리가족과 닮아 보였다. 만약 남편이 맹장수술로 입원을 했더라면 난 가벼이 웃으며 복권을 선뜻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

평생 투석 치료를 받으며 환자가 겪어야 할 고통을 그 누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항상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합병증에 대한 공포! 생계를 꾸려가던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여 투석을 시작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축해 두었던 돈이 바닥났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더군다나 퇴원해서도 평생투석을 해야하니 병원비는 또 어떻게 마련해야 될지 도무지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우리부부 노후를 위해 가입했던 개인연금보험, 우리아이들대학 들어가면 쓰려고 가입해둔 교육보험 그리고 암보험까지 모두 해약해서 써버린 없는 터라 넉넉지 못한 형편은 아픈 남편과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건강하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하고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 노릇 제대로 못하여 미안하다며 말도 잘 못하는 아들을 붙잡고 "차라리 널 낳지 않았더라면 ...." 말끝을 흐리며 고래를 숙이는 남편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울며 안아 키운 아이가 지금 여섯 살이 되었다. 작년부터 다른 아이들처럼 태권도 학원에 보내달라 조르는 아들에게 한 살 더 먹으면 보내준다고 하다 요즘은 아예 학교에 입학하면 보내주겠다고 멀찌감치 약속을 미루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던 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우체부 아저씨가 건네는 봉투에 씌어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국민연금? 한 5년 전부터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된다는 이장아저씨의 말씀에 그저 남들 하는 대로 적은 금액으로 별 관심 없이 납부하고 있던 터라 봉투째 마루 위에 던져 놓은 채 일을 나갔다가 저녁 무렵 돌아와 보니 여전히 마루 위에 놓여있는 하얀 봉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뜯어본 봉투 속엔 "국민연금가입내역안내서"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가입도중 발생하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장애를 입게될 경우에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연금이 지급된다는 내용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전화를 하여 장애연금담당자와 상담을 하고 다음날 인근 지사로 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난 도중에 과연 연금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라는 의문과 심심찮게 보도되는 연금관련뉴스가 좋은 부분보다는 그렇지 못한 부분에 집중되어 나 역시 연금제도에 대한 인식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그냥 연금으로 생활은 힘들고 자동차 기름값 정도나 될 수 있을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너무 적게 내서 못 준다고 하면 어떡하지?"남편이 건강할 때는 집에서 살림만 한 처지라서 관공서 방문이 몹시 낯설고 떨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자 문 앞에 앉아있던 직원이 일어나 밝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며 상담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곧이어 상담실로 들어온 장애담당자는 "많이 힘드시죠? 아이가 정말 예쁘게 생겼네요."라는 첫인사로 상담을 시작했다. 담당자의 친절한 안내로 힘들이지 않고 장애연금 청구서를 제출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치 길고 지루한 절망의 터널을 빠져 나와 밝은 희망의 빛이 우리 가정에 비춰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달 후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장애2급으로 결정되었다는 내용의 안내문과 증서가 우편으로 보내졌고, 더욱이 최소 투석 일로부터 3개월 경과시점으로 소급하여 3년 5개월분의 연금액이 한꺼번에 지급되며 매월 일정액의 연금액이 지금까지 납부했던 총금액의 수십 배가 넘었고 매달 입금되는 연금액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물론 돈 있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적은 금액일지 모르지만 우리가족에겐 얼마나 믿음직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그 동안 병원비가 모자라서 이 집 저 집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될 때는, 적지만 매달 내야되는 연금보험료가 부담스러웠고, 개인보험처럼 해약 할 수 없다는 말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으나 국민된 도리로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한 국민연금이 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정말 어렵고 힘이 들 때 우리가족에게 희망을 안겨준 국민연금! 지금도 우리 주위엔 국가를 믿지 못하고 연금제도를 불신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우리 국민들의 연금제도에 대한 인식은 업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자신 있게 외치고 싶다. "국민연금은 업둥이가 아닌 진정한 효자라고."마지막으로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 국민연금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연금제도에 대한 인식을 높여 모든 국민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 국가 건설을 위해 계속 노력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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