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위풍당당한 아버지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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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250

내용

빨갛게 노랗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조금씩 퇴색되어버리는 듯 하더니 어느새 그 힘을 다 잃어버린 채 가지에서 떨어져 도로를 나뒹굴고 있다. 그리고 겨울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질 때면 대구에 계신 친정 부모님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상경해서는 내 일에만 매달린 채 부모님께 안부전화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못난 딸년이었고, 용돈 한번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하면서 명절 때면 늙으신 부모님들이 챙겨주시는 음식들을 아무 죄책감 없이 가져오기만 하는 철부지 막내딸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말이다.
물질적이니 보상만이 그분들에 대한 보답은 아니겠지만, 올 겨울엔 요즘 많이들 쓴다는 금매트를 사서 친정으로 보내드렸다. 언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가냘픈 다리로 페달을 밟으시며 칠순의 나이에도 보란 듯이 일을 하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시기에…….
그리고 며칠 후, 친정에서 보낸 택배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퇴근 후 밤잠을 설쳐가며 끓이고 또 끓여 큰 반찬통에 담아 꽁꽁 얼리고 그것이 행여 흐를까봐 비닐로 싸고 또 쓰기를 반복했을 곰국이며, 내 남편의 영양제, 그리고 철부지 막내딸이 먹을 칼슘 제를 정성스레 싸서는 말이다.
순간 눈시울이 뻘게지더니 이내 뜨거운 액체가 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이제 15개월 된 내 아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놀던 장난감에 싫증이 난 건지 내게 와서 씽긋 웃어보였다.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전화기를 손에 들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런 건 왜 보낸 거야?”
“그냥 먹어라, 고마. 그까짓 거 몇 푼이나 한다고. 나 바쁘다. 끊는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는데 왠지 씁쓸하다.
이렇게도 내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보내준 그 어떤 것도 그냥 받지를 않으신다. 여태껏 평생을 바쳐가며 키운 5남매인데, 이제 늘그막에 아들, 딸들에게 보상을 받을 만도 한데, 별것 아닌 선물에도 그냥 받고 넘기는 일이 없으시다. 내 부모님들의 꼬장꼬장한 자존심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이 늙으신 내 부모님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기에 존중하고 또 존중해드릴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부모님들의 삶의 방식이기에…….
아이를 재우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커피향이 내 여린 감성을 다시 자극ㄱ한다. 아주 잔인하게 내 속에 서며 들어와서는 애써 멈추었던 눈물샘을 터뜨려버린다. 6년 전 그 겨울, 그 지독하리만큼 처절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버지 사고 나서 위독하시다. 어서 대구로 갈 준비해라.”
큰오빠의 다급한 전화에 순간 내 귀를 의심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건강하신 아버지가 사고, 사고라니? 서울에 함께 있는 언니, 오빠와 함께 대구로 향하는 내내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맙소사, 8톤 트럭이 아버지의 골반을 타고 지나가버렸단다. 아버진 병원에서 비참할 정도로 처절하게 누워계셨다. 아니 누워계신 것이 아니었다. 온몸이 피범벅이셨고, 골 반쪽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고 운이 좋으면 휠체어 신세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 내 아버지는 64세였다.
어찌도 그렇게 잔인한 일이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는지, 꿈이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필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자식들 생업에 지장이 있다며 어서들 올라가라며, 뭔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난 그 자리에 남아서 아버지 병수발을 들었어야만 했다. 이렇게 문득문득 죄책감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자식들은 외지에 살았기에 아버지의 병수발은 순전히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가 몇 번의 대수술을 치르고, 기적적으로 깨어나시면서 내 어머니는 병원비 마련을 위해서, 화장품 방문 판매원직을 계속해야만 했다. 아버지 병수발에만 신경 써도 모자랄 판국에, 자식들에게 도움받기가 싫어서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를 누비며 화장품을 팔고, 수금을 다니셔야만 했다. 따로 간병인을 쓰지도 않으시면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자전거 무게보다 더 큰 당신의 크나큰 시름을 안은 채 눈물을 삼키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는 병원과 일터를 오가야만 했다. 그때도 우리 분모님들은 그렇게, 그렇게 당신들 힘으로만 버티어내셨다.
신이 그 노력에 감동한 것이었을까? 아버지는 정말 너무나도 많이 좋아지셨고, 이제는 통원치료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때가 꼭 1년이 지난 뒤였다. 목발에 의지해서 병원을 혼자서 다니고, 막내딸 결혼식 때 손잡고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면서 새벽 6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나가 걸으셨다고 하셨다. 처음에 목발을 짚고 그 운동장을 2시간 만에 한 바퀴 도시더니 몇 달 후에는 목발 없이 혼자서 20분 만에 걸으셨다고 하셨다.
난 그 얘기를 결혼승낙 때문에 친정에 내려간 날, 잠자리에서 엄마에게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 병수발을 위해 남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못했던 내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날이었으리라. 어머니가 통장을 보여주었던 때가. 어머닌 문갑 서랍에서 통장 두 개를 꺼내셔서는 내게 펼쳐보라고 했다.
하나는 아버지 통장이었다. 의아해하며 쳐다보던 내게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뭔가를 짚어서는 말씀하셨다.
“이게 뭔 줄 아나?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효자노릇 톡톡히 하는 거다. 봐라. 아버지에게 매달 이만큼씩 용돈 보내주는 자식이 하나 생겼다 아이가.”
그렇다. 아버진 사고가 나기 전 1여 년 전부터 매달 노령연금을 받고 계셨다.
“처음엔 니 아버지 얼마 안 되는 월급에 몇 천 원씩 떼어가는 게 싫두만, 10년을 넣고, 일시금으로 받을라. 하다가 이렇게 연금으로 받게 되었다 아이가. 참말로 잘했지. 그 당시엔 금리가 높아서 일시금으로 받은 사람이 많았거든. 이게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우리 영감, 할머니에게 정말로 큰 보탬이 된다 아이가. 아버지 사고 때도 이 신세 톡톡히 받았고. 너 아버지 죽고 나도 나한테까정 나온다더라. 얼마나 좋누. 죽을 때까지 자식들한테 손 안 벌려도 되고, 너의 아버지 한 달 술값은 안 나오겠나.”
“술값치고는 좀 많네요, 뭘.”
그때가 아마 20만원이 좀 덜 되는 돈이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통장을 내미셨다.
“ 이건 너 시집 갈 밑천이다. 이정도면 뭐,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거다. 뭐 모자라면 할 수 없는 거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하고 한심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 순간, 그 순간만큼은 두고두고 못 잊을 거다. 아니, 잊어서는 안 되는 시간이었다. 내 하던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아버지 병수발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나쁜 딸인데, 폼 나게 병원비 한 번 보태드린 적이 없었는데……. 지금도 그 때 생각만하면 오싹할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내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떳떳하려고 그렇게도 치열하게 사셨는데, 부끄러운 막내딸인 난 내 앞길만 보고 달려 온 거다.

현재 내 아버지는 그 때의 사고로, 약한 장애등급을 가지고 계신 채 칠순의 연세에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계신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저 세상으로 갔으면 하는 게 자존심 강한 우리 아버지의 작은 소원이시다.
격일제지만 하루 24시간의 힘든 노동을 마치시고는 낡은 자전거에 쓰디쓴 소주 한 병을 꼭 사들고 퇴근하시곤 한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모 화장품 회사의 방문판매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젊고 예쁜 아줌마들이 자가용으로 일 다니실 때 우리 어머니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 그 틈에서 당신이 나이가 제일 많으시다면서, 그렇지만 일은 뒤처지지 않는다면서 자랑스러워하시면서.
두 분은 아직도 젊으시다 며 일을 하셔서 생활비를 충당하시고, 받으시는 노령연금은 꼬박꼬박 저축을 하시고 계신 것 같다. 그 돈이 모이고 모여서 집 사는데 보태졌고, 지금은 집수리 하는 곳에도 쓰여지고, 집안에 큰 일이 닥쳐졌을 때 살며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올 여름이었지, 아마. 우리 아버지 칠순의 생일날 대구 친정에 내려갔을 때다. 이번엔 아버지가 통장을 보여주시면서 흐뭇해하셨다. 부끄러운 5남매를 앞에 두고서.
“내 힘 있을 땐 벌어서 생활할 것이고, 또 일 못할 땐 이게 안 있나? 이기 내를 도와줄 끼다. 엄마, 아버질랑은 걱정 말고 너네는 너네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거다. 그기 엄마, 아버질 위하는 거고.”
누가 막내 아니랄까봐, 통장을 슬쩍 보니 웬걸. 예전에 내가 보았던 금액보다 조금 더 컸다. 5만 원 정도가 더.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게 신통방통하데이. 내도 이게 조금씩 많아지는 게 신기하데이. 이것도 물가를 아는 모양인갑따. 물가가 뛰니까 이것도 뛴다 아이가. 요거 받은 지 한 7년 되었는데 해마다 조금씩 늘더라카이.”
아버지의 그 표정은 기력이 다한 여느 노인네의 모습이 절대 아니었다. 그 통장을 들고서는 마치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군처럼 위풍당당하셨다.
연금은 우리 부모님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주는 너무너무 고마운 존재이고, 우리 부모님의 힘의 원천이 된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마땅히 모아둔 재산이 많으신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곤 집 한 채, 그리고 매달 나오는 연금, 그리고 우리 5남매가 전부이니까. 아니 우리 부모님의 죽지 않는 그 꼿꼿한 자존심도 한 몫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5남매는 아버지, 어머니께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아직도 저렇게 기운 찬 부모님들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저 연세에 저렇게 큰소리 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부모님이라고 그냥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훗일을 위해 형제 계를 만들어 매달 2만원씩 내자고 협의했다. 아버지의 연금이 그렇듯 얼마 되지 않은 돈일지라도 그것이 그렇게 큰 힘을 주는걸 봐왔기에…….
오늘도 우리 아버진 아파트 경비를 서실 것이고, 어머닌 자전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시며 화장품을 팔러 다니실 거다. 아직도 자식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고, 사주고 싶어서 시장에 나갈 때마다 당신들 물건보다는 자식들 반찬거리, 손주들 장난감이며 옷 등을 더 많이 보실 거다.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왠지 나도 모르게 흡족한 웃음이 나왔다. 내 부모님이 고맙고 자랑스럽고 대단해보였기 때문이다.

아, 자고 있던 내 아들이 깨어서 엄마를 찾는다. 녀석, 고맙게도 깨어나서 울지도 않는다. 녀석을 안고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곰국이랑 영양제 잘 먹을게. 고마워요. 역시 엄마밖에 없다니까”
“그래, 그래. 좋으면 또 얘기해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우리 재원이 옷이라도 사서 같이 넣을걸. 그랬네. 우짜노. 우리 똥강생이는 자나?”
말 시작하려고 종알종알 대는 내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거다.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을 벌써 내게서 전화기를 뺏고는 뭐라고 떠들어대기 바쁘다.
“아하, 그놈 많이 컸데이. 재원아, 외할매다. 외할매.”
수화기에선 친정어머니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내 아들은 뭔지도 모른 채 까르르 대고 나 또한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