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어디 이런분 계시나요?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501

내용

부제: 몸짱, 맘짱, 성격짱 우리 아버진 국민연금 마니아


"얼마나 사신다고 그 고생을 하십니까. 제발 그만하세요."
어느 날 아버지랑 한바탕 다툼을 벌였습니다. 서로 살가운 말이 오가는 사이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사이지만 그래도 싸우지는 않았는데 그날은 그렇게 다투었습니다.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어디에 무슨 돈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짬짬이 온갖 파지와 고물들을 모으고 계시는 것을 제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싸움의 발단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평상시에도 나이 많으신 분들이 지하철 신문을 모으고 종이 모으는 것을 보면 ‘젊을 때 뭐하고 지금 고생을 사서하시나’하며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놈입니다. 그런데 내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버지 건강도 걱정되고 온갖 잡동사니가 쌓이는 것도 싫어 그냥 화를내었던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저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그 이후로도 쭉 꿋꿋이 당신이 하실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월급날이었습니다. 저는 매번 월급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세금 명세서를 살펴보며 우울해하고 있었죠. 특히나 국민연금 항목을 보고 ‘이것만 아니면 내 월급 단위가 달라지는데.’하고 못마땅한 심정으로 귀가했습니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혼자 뭔가 들여다보시며 연신 웃고 계시더군요. 평상시에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잘 웃지도 않는 분이 웬일인가 싶어 뒤로 몰래가 훔쳐보았습니다. 별로 많지도 않은 돈인데 어찌나 좋아라. 하시던지. 아버지께 물어보았습니다. 그 돈은 뭐냐고. 그랬더니 "나 이제 국민연금 받잖냐"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속으로는 조금 놀랐습니다. 어느새 우리 아버지가 벌써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셨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으셨나 하는 생각에 겁부터 덜컥 났습니다. 아버지 나이를 한동안 잊고 있던 무심한 아들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미안함 때문에 저는 지나가는 말을 한 마디 더 던졌습니다.
"아버지 그 돈으로 뭐할꺼예요. 저 용돈 주실꺼예요?"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이놈아. 이때껏 퍼갔으면 됐지 뭘 더 뺏어가려해. 다 쓸데가 있으니까 참견마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냥 뭐 필요하신 거 사시려나 보다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푼돈모아 빛나게 쓰기

한 4달이 흘렀을까요. 슈퍼에 담배를 사러 갔다가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언뜻 들리는데 제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거 있잖아 205동 704호 아저씨. 요즘 세상 그런 사람 없지"
"맞아 누가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 그렇게 쓰고 싶나"
"에이 우리 애 아빤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일이야. 암. 괜히 내가 우리 남편에게 그 아저씨 반만 닮아보라고 이야기 했다가 덤탱이만 썼지 뭐"
동네 슈퍼 평상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말씀들을 하시는데 저는 무슨 일인지 궁금은 한데 직접 물어보기엔 쑥스러워 담배만 사고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어머니께 아까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도대체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기에 동네가 수근거리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네 아버지 젊었을 때부터 남 도우며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 소원성취하시는게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이때까지 집장만, 애들 교육비마련, 자식들 결혼자금 마련 등을 위해 아버지가 하고 싶다는 일을 계속 말려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되셨고 말릴 이유도 없어졌기에 당신이 하고픈 일 맘대로 해보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요. 대체 그 하고 싶으시다는 일이 뭔데요" 성격도 급한 저는 어머니께 대답을 재촉했습니다. 제 얼굴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다급해 보였던지 어머니는 "그리 큰일은 아니고 그냥 단순한 일이야. 그냥 밥 못 먹는 동네 노인들 데리고 점심 사주시고 다닌단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선행보다 "아니, 아버지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일을 해요"라며 돈 걱정부터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나쁜 놈이죠. 좋은 일 하시는 아버님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할망정 뜯어 말릴 생각부터 하고 있는 놈이니까요.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네 아버지 월급 일부분이랑 파지 모으셔서 버는 돈, 그리고 나 몰래 받는 국민연금으로 하는 것 같더라"라고 답하시더군요.
그제야 지난 번 아버지가 혼자 싱글벙글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 받은 10만 원 정도의 국민연금이 어머니께는 비밀이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도 모른 척 해주시는 어머니의 센스. 열심히 모아 가치 있게 쓰시려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노력. 새삼 부모님들이 자랑스러워 보이더군요.

부자간의 비밀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지와 술을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끼리 모여 술 한 잔 마신지가 너무 오래된 듯 하여 아버지를 살짝 불러내 동네 포장마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고 싶으셨는지, 또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시라고 보태주는 돈을 굳이 왜 다른 용도로 쓰시는지 어찌나 궁금하던 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저에게 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내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이라는 것을 가입하긴 했다만 난 아직 내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수입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들도 많단다. 돈 몇 천원이 없어 끼니를 굶는 분들에게 작은 돈이지만 끼니를 사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리고 내가 먹어 느끼는 포만감보다 보는 즐거움으로 인한 포만감은 말로 표현 못할 일이다. 내가 넣은 돈이지만 결국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노인 분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내 생각에 동의하면 조금만 보태려무나."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는 껄껄거리며 웃으시더군요. 평생 아버지랑 한 집에 살면서 ‘정말 존경스럽다’라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 날만은 아버지가 달라보였습니다.
덧붙여 아버지는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너 아니? 사실 난 네 어머니가 국민연금을 내야한다고 했을 때 언제 그 돈을 받을까 싶은 마음과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생각에 정말 반대를 했다만 지금은 정말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단다. 그리고 내가 낸 돈 보다 지금 받는 돈이 더 많아. 허허," 기분 좋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저 역시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기분 좋은 분위기에 저희 부자는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둘 다 취기가 어느 정도올랐을때쯤 아버지는 "너 그냥 국민연금으로 저축을 하나 들어라. 난 국민 연금이 정말 좋다. 때 되면 늦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지. 공돈으로 좋은 일도 할 수 있지. 가끔 내가 정말 필요할 때 네 어머니몰래 사용할 수 도 있지 일석 삼조다 삼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마도 아버지는 국민연금으로 인해 평생 당신이 하고팠던 일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과 적지 않은 돈을 받는 쏠쏠함이 정말 고마우셨나 봅니다.
비록 국민연금이 아버지의 봉사활동에 큰 영향을미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 자체가 너무나 고맙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께 제안 하나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술값 계산하시면 아버지 사업에 제가 매달 10만원씩 보태드릴께요. 대신 어머니께는 비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다른 집은 딸들이랑 엄마랑 편 갈라서 아버지를 왕따 시킨다고 하던데 우리 집은 반대로구나. 암튼 간만에 아들이랑 술 마시니 기분이 좋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비밀 용돈인 국민연금으로 인해 부자간에 뜻하지 않은 비밀 이야기가 하나 생겨버렸습니다.

"국민연금, 얼른 내라니까"

그 날 술자리 이후 아버지와 제 사이는 더욱 끈끈해졌습니다. 격일로 근무하시는 아버지는 휴일은 꼬박 동네 어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셨고, 주말에는 저도 함께 데리고 다니시면서 제 자랑도 하시고 좋은 일에도 동참시켰습니다. 주말을 아버지와 함께하여 여자 친구에게 약간의 불평은 들었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라고 설명을 하니 금세 여자 친구도 이해를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집안 행사 때문에 큰 집에 갔다가 아버지는 큰집 형네 세금 명세서 중에 국민연금 체납 영수증을 발견하시고는 행사 내내 큰 집 형에게 충고를 하셨습니다. 왜 국민연금을 내야하는지, 나중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나중에 못 받는다는 이야기 같은 건 믿지 말라는 둥, 너도 금방 나이 먹는다는 이야기 등등. 그 날 이후 종종 전화하셔서 체납금 다 냈는지까지 확인하시더군요. 형은 저에게 전화를 해서 "왜 저렇게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제가 여러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나중에는 "안 낼 수가 없겠다"라며 두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튼 아버지는 이제는 국민연금 마니아가 되셔서 동네방네 다니시며 홍보를 하고 다니신답니다.
덕분에 주위 분들은 불평불만을 털어놓으시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꿋꿋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네 나이가 되어 돈을 수령하게 되면 내 말 듣길 잘했다. 라며 나한테 고마워 절이나 하지 마라." 라고 말이죠.
아무튼 국민연금 덕분에 좋은 일 하시느라 열심히 다니는 아버지는 건강도 더 좋아지시고 봉사활동으로 웃음도 많아지시고 아울러 성격도 좋아지셨답니다.
그리고 그 덕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매일 다투기만 했던 제가 가장 많이 받고 있지요. 사실 아직 저는 젊은지라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덕에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노후에는 작은 것이라도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이들이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아버지 같은 마니아가 조만간 더 많아진다면 자연스레 국민연금의 소중함을 모든 이들이 잘 알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