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215

내용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지역신문을 읽고 있던 중에 ‘국민연금 수급자 생활수기’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선은 창밖의 청아한 가을 하늘에 꽂혀버렸고 지난 5년간의 생활이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씩 지나갔습니다.
저는 근엄하지만 자상하신 아버지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신 어머니, 그리고 항상 씩씩한 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셨고 어머니는 놀면 더 아프시다며 항상 부업을 달고 사셨습니다. 아끼고 아껴 부모님의 오랜 숙원이셨던 내 집 마련도 하시고 언니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는 등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냉장고로 달려가 뒤적이고 있을 때 집으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다가 교통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좀도둑 한 번 들어온 적 없이 평화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때 그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저 남의 일인 줄만,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아빠가 입원하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의식이 있으셨는데 그 와중에도 우리가 걱정할까봐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3년이 넘게 입원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여러 차례 병원을 옮겨 다니시며 수술도 받고 치료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고된 생활을 하시는 동안에 우리 남은 세 사람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대학생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두 딸의 등록금을 버시느라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고 언니와 제가 도와드린다고는 하지만 집안 살림까지 하시느라 자주 앓아 누우셨습니다. 언니하고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했지만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은행에 저금해 놓았던 돈과 보험회사에서 나온 돈도 바닥이 났고 빚은 조금씩 쌓여 갔습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안 분위기도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몸이 아프셔서 누워계신 아버지는 아마 가족들 걱정에 마음까지 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추간판탈출층’이라는 병명이었는데 목뼈가 잘못된 것이라서 깁스를 하고 계셔야 했습니다. 혹시 후유증이 생길까봐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도 함께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상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셨나 봅니다. 퇴원을 하셔서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건강해지셨다고 믿고 있었는데 장애인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또 한 번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다치셨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것은 치료를 위한 운동이었는데 보조금이 나온 것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수영과 헬스를 다니시며 가족에게 미안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지……. 물 한 모금까지 아껴 먹을 저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돈의 액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가뭄의 단비처럼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택시 회사에 다니시며 국민연금을 냈었다고 하던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소식을 들으니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은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을 (물론 아르바이트 등으로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원을 해주어 아버지께서는 학원을 다니시며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가장의 책임감으로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생 운전만 하시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신 아버지가 펜을 드신 것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공부하시고, 중간에 운동하시고, 주무실 때까지 공부만 하셨습니다. 화장실에서도 책을 보셨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강의 테이프를 들으시며 이동하셨습니다. 목이 아프셔서 책을 10분 보기도 힘든 아버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서 대를 사 드리며 힘내시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눈도 침침하고 머리도 안돌아간다고 하시더니 10여 개월 동안 공부한 끝에 합격을 하시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 시험이 정말 어려웠다고 하던데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하십니다. 사장님이 되신 겁니다. 처음 하시는 사업이라 1년 정도는 힘들었습니다. 소득은 없었지만 국민연금으로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더 힘든 시기가 이미 지나갔기에 가족 모두가 강해졌나 봅니다. 다시 저녁 식사시간에 웃음꽃이 피었으니까요.
현재 장애로 인해 국민연금을 받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는 관계로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국민연금으로 납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것이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하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오히려 저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우리에게 모두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든든한 노후대책인 셈입니다. 저도 요즘 직장을 다니며 국민연금을 내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씩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제가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 해줍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준다고, 나중에 우리가 다 혜택을 받게 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끔찍했던 아버지의 사고 소식, 어려웠던 생활, 그러나 국가의 도움으로 재기하기까지 제가 직접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꼭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같이 국가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여 그것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꼭 희망을 가지십시오. 그 희망과 함께 노력까지 하신다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 허공처럼 보이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커피를 마시며 옛 생각을 하다가 지난 일이 감격스럽게 밀려와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이렇게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에게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국민연금과 근로복지공단에 감사드립니다. 혜택을 받은 만큼, 또 저의 미래를 위하여 앞으로도 성실히 납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