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6회, 장려상)병든 마음의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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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412

내용

제6회 장려상
병든 마음의 치료제

이 종 석/경북 경산시 진량읍


촉촉한 늦가을 밤바람이 꼭꼭 여며 닫은 문틈 사이로 스며 들어와 누워 있는 나의 코 끝을 찡하게 한다. 가래 섞인 나의 기침이 밤송이를 삼킨 듯 목을 찌르며 50kg도 안 되는 앙상한 몸뚱아리를 이불 속에서 들썩들썩 거리게 한다. 저 멀리 대문 밖에서도 들리는 나의 기침 소리에도 나의 아내는 하루종일 들일을 한 탓인지 아랑곳 하지않고 나에게 등을 보인 채 곤히 자고 있다. 나의 병도 이 늦은 가을밤과 같이 깊어 가는 건 아닌지…

나는 폐암 말기 환자이며 국민연금으로부터 장애연금을 받고 있다. 20대 초반 군대를 제대한 후 결혼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가진 것이라곤 수저 2벌과 간장종지가 전부였다. 아내와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가진게 없는 자의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어서 였다. 지금도 큰아들, 작은 아들을 보면 제일 미안한게 일년에 딱 2번 밖에 쌀밥을 못 먹이고 키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잘 자라주었는지. 병들고 늙은 이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고 서로 잘 하려고 하는걸 보면 어릴 때 못해준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 직장생활하면서 매일 받는 월급에서 행복을 찾고, 저금도 그럭저럭 하면서 살아왔다. 나의 노후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만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1988년 1월부터 매월 받던 누런 월급 봉투에 국민연금 보험료라며 얼마를 떼었던 것이다.

그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게 뭐꼬? 국민연금이 뭐꼬? 정부에서 서민들 돈 못 뺏어가서 안달인 갑다" "이것 계속 내야 되나? 받기는 하나? 받는다면 도대체 언제 받는 거고?" 모인 동료들과 얘기가 끝이 없었다. 노후보장으로 정부에서 실시하는 사회보험이라고 회사 담당자가 간단히 설명을 하였지만, 내가 회사를 그만두는 그때까지도 난 솔직히 내가 받을 수 있을까 의심을 했으며 그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떼이는 눈먼 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내가 월급이 오르면 오른 만큼 떼가고 일년에 한번씩 가입 내역 안내서라는 통지서만 한 통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나의 인생의 발자취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저금통장, 자식들 커가는 모습, 그리고 나의 아내 손마디가 굵어지는 것이다. 월급봉투의 명시된 국민연금 보험료도 같이.


병원에서 받은 위암초기 진단
막내 딸 아이가 고3이었을 때, 난 인생에서 첫 번째 시련을 겪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속이 늘 불편하고 소화도 안되고 해서 대학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위암 초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게 아닌가. 나는 초기라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2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잘 이겨냈다. 겨우 회사에 병가 두 달 내고는 그 안에 다 나아 다시 회사에 출근할 생각이었다.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졌다.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통원치료만 하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단다.

어느덧 큰아들, 작은 아들 결혼을 다 시키고 막내 딸 아이만 남아 별 걱정할게 없었다. 그 동안 발버둥치며 이를 깨물고 살아온 나와 아내에게 IMF는 직장을 자꾸 그만 두라고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명예퇴직의 아픔을 맛보았다.

아직 난 젊은데, 딸 아이도 시집 보내야 되는데,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명예퇴직을 하고 난 두 달쯤 지나서 계속 기침이 나왔다. 낮에도 밤에도 멈추질 않는 것이다. 근처 조그만 의원들을 1년 여 다녔다. 거기에서도 X-RAY 찍고 검사도 받았다. 감기라고만 했다. 근데 점점 심해져 갔다.

하루는 따가운 기침을 여러 번 했는데 글쎄 가래에 피가 섞여져 있는 것이다. 뭔가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아들 내외의 성화에 밀려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날은 토요일 이었는데 처음 해 보는 검사를 받고 집에 누워 있었다. 다음날 저녁 해질 무렵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대학병원 인데 지금 빨리 응급실로 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일요일인데도 말이다.

나의 아내는 무슨 짐을 꾸려야 할지 허둥대고, 며느리도 불안한 눈으로 자꾸 울먹였다. 응급실에서 몇 시간 만에 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아저씨, 이때까지 이상한 것 못 느끼셨어요? 아니 어떻게 살았어요? 하여튼 다시 검사해봅시다."


절망적인 말기 폐암까지
검사 결과 폐암 말기이며 암 진행된 부위가 폐와 다른 조직과 연결된 부위라서 수술도 안되며, 아니 수술할 단계를 벌써 지났으며 거의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만에.

중환자실에서 난 계속 잤다고 한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약물로 계속 재웠다는 것이다. 가끔 깨어나면 난 연습장과 볼펜을 찾았다. 그리고 없는 힘을 다해 아내에게 글을 썼다.
'못해줘서 미안하다. 딸 아이 시집가는 것 보고 죽고싶다. 물려줄 많은 재산도 없고 자식들에게 잘해준 것도 없다' 내가 쓴 유언이었다.

중환자실에서 3주 정도 있다가 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이것만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7년 전에 받은 위암 수술로 인해 장 유착이 온 것이다. 밥 한 톨 넘길 힘도 없는 나에게 장 유착은 최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유착으로 수술을 한다면 너무 쇠약해서 수술 후 못 깨어날 것이라 했다. 일반 병실로 옮긴 후에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최후의 수단으로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사이 내가 우겨서 퇴원을 했다. 지팡이 잡을 힘도 걸을 힘도 없는 나는 매일 누워 있었으며, 메스꺼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를 넘기면 정말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이 내 손에는 한 웅큼씩 머리카락이 쥐어져 있었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도 없이 온통 짜증 뿐 이었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이런 나를 다 받아주었다. 부처님이 자비를 베푼 탓일까, 항암치료는 기적에 가깝게 큰 효과가 있었으며 수 차례 병원을 들락거리며 받은 치료로 조금은 병이 나아 있었다.

그러나 병이 좀 나았나 했더니 이젠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병원비와 민간치료 비용은 이젠 살고 싶어도 돈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자식들도 제 살기 빠듯하여 끝없이 부담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인생의 큰 고비를 두 번 넘긴 나는 누가 봐도 환자처럼 보였다. 다 빠진 머리카락-아예 내가 밀어 버렸다-, 약물로 부어 오른 얼굴, 팔과 다리가 똑 같은 몸둥아리, 몸무게가 38kg까지 내려 간적도 있었다. 50kg을 넘기는 게 나의 아내 소원 이었다. 이렇게 2년이 지나갔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정말 목숨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병원비로 탕진한 병든 몸이 마지막으로 기댄 곳은 국민연금
그러던 어느날 딸아이가 국민연금에 장애연금이 있다며 한번 문의해 보자고 했다. 명예퇴직 후 국민연금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채 살아 왔는데, 글쎄 딸 아이가 그 동안 지역 가입로 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연금은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초진 일로부터 2년이 경과하면 장애심사를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큰아들이 국민연금관리공단 남대구지사를 방문하여 상담하였는데 직원이 장애연금 서류는 복잡하니 잘 듣고 가셔야 된다며 상세히 설명을 하더라는 것이다.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의사가 폐암은 장애가 아니라며 해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의사는 동사무소에 장애인 등록하는 것으로 자꾸 오해를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안되어 국민연금직원과 통화 한번 해 보라며 다그쳐 통화한 후 겨우 국민연금 장애 진단서와 각종 서류들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한달 뒤 집에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국민연금장애 3급에 해당된다는 소식이었다. 매달통장으로 37만원이 들어 온다고 쓰여져 있었다. 너무 기뻐서 국민연금 관리공단에 장애연금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병이 많이 호전되어 3급이 나왔지만 다행입니다."라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젠 가끔 읍내 장에도 손녀와 손잡고 구경갈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오랜 직장생활동안 퇴직금은 벌써 자식들 결혼비용에, 병원비에 다 써버리고 남은 것은 병든 이 몸둥아리 뿐인데 그저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남들은 회사 그만두고 일년 뒤에 국민연금 타서 쓴다고 할 때에도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싶어 놓아 둔 연금이었는데. 이렇게 병든 마음을 치료해 줄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 한번 입원하게 되면 소용도 없는 적은 돈이지만 지금으로써는 손녀 딸들 용돈도 줄 수 있고 다달이 날아오는 청첩장에 축의금도 낼 수 있다. 앞으로 장애연금을 못 받을 정도로 병이 나으면 노령연금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빨리 낫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