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아버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125

내용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 탓에 평소 혈압이 높으신 어머니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엔 밖에 나가지 마세요.”
“혈압약은 아침 식사 전에 꼬옥 드세요.”
당뇨에 혈압이 높으신 어머니는 관절염까지 있으셔서 항상 식사 전엔 몇 가지의 약을 드십니다. 그런 와중에 올 봄에는 집근처 뒷밭에 올라가셨다가 넘어지시는 바람에 팔목이 부러지셔서 4개월간 깁스를 하시고 지금은 물리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그런 어머니는 아프신 당신 몸보다는 4년 전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생각에 마음이 더 아프신 모양입니다.
“오늘이 말일이냐?”
“네.”
무심코 대답하고 나서 뜨끔한 생각에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생전에 들어놓으신 국민연금이 두 분 사랑의 징표라고 생각하십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나이 들어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시겠다고 가입하신 연금이 지금은 어머니의 약값이 되고, 생활비가 되고,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가 되리라는 걸 아셨을까요.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노령연금 수급자가 되신 아버지는
“5년을 넣었더니 다달이 잊지 않고 용돈을 주네.”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준비 없이 혼자되신 어머니가 얼마나 눈에 밟히셨을까 생각해보지만 넉넉지 않은 시골 생활과 네 명의 아이를 기르다보니 다달이 어머니의 용돈을 드리는 사람은 여전히 돌아가신 아버님이십니다. 그 돈으로 어머니는 매달 명원에 가시고, 교회에 나가시고, 손주들 용돈도 주십니다. 때로는 생활비가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르는 제 주머니에 슬쩍 넣어주곤 하십니다. 한사코 뿌리치는 제게 어머니는
“네 시아버지가 주시는거다.”
하십니다. 그럴 때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되신 어머니께 정말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곤 합니다. 팔목이 부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은 어머니의 수술비로 너무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너희를 고생만 시킨다며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께
“병원비는 아버님이 주신거예요.”
하고 말씀드리면
“영감 고맙수.”
하십니다.
문득문득 몇 년 후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방송자료를 접하게 됩니다. 저 역시 시골에서 넉넉지 않은 생활 때문에 계속 불입을 해야하나 하는 갈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집뒤에 아버님이 심어놓으신 자두나무를 생각합니다. 올 봄에도 보라색 자두로 우리 아이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던 자두나무는 아버님께서 생전에 손주들 자라면 따먹게 하신다고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소중한 손주들 생각에 퇴비를 주시고, 가지를 치고, 당신은 드실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셨을 텐데도 가족들을 위해서 나무를 심으시고 소중히 가꾸신 아버님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제 가슴에도 느껴집니다. 국민연금은 저희 아버님처럼 남겨진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인의 노후는 물론 준비 없이 남겨진 배우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을 남겨주는 것.
그리고 추억하게 하는 것.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했던 것처럼.
저는 국민연금은 가장 작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사랑이 지금은 너무도 커다란 나무가 돼서 어머니께 그늘을 만들어주고 생활의 여유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을 저 세상에서나마 아버님이 아실 수 있었으면, 그래서 어머니 걱정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아버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버님과 함께 했던 그 추억들을 소중히 하고 있다는 것을 기뻐하셨으면 합니다.
어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 매월 말일은 아버님의 사랑을 확인할 것이고,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여름내 구슬땀을 흘리며 지어놓은 농사가 태풍이 와서 때로는 홍수가 져서 한 순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희망을 심습니다. 이런 농부의 마음으로 국민연금도 긴 생명력으로 촉박한 땅에서도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많은 이들에게 열매와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