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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최우수상)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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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7/04/12

조회수

2107

내용

3회 최우수상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서영한 /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 장애연금수급자

"따르릉 따르릉..."
괘종시계가 연신 요란하게 울려댔다.
"봐요! 봐요! 일어나요. 일곱시라니까요!"
아내가 깨우는 소리가 조금은 짜증스럽게 들려왔다.
벌써 머리맡에는 밥상이 차려있고, 그 한켠에는 도시락 보퉁이가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고, 라면 한 젓가락이나 먹었을까..
"빠아-앙, 빠아-엉"
통근버스의 경음의 방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이고, 언제나 이 짓을 면할꼬?"
아내는 투정 반 걱정 반. 하품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아, 시끄러! 새벽부터 재수없게!"
얼른 도시락을 휑하니 낚아채고는 대문을 나와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감독님 오늘은 늦었습니다? 어젯밤에 무리한거 아닙니까?"
여기 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인사와 농담이 벌써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은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산생활 3년만 하고 끝낸다는 것이 벌서 4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 각보다는 대책이 서질 않았다.
대학물까지 먹었다는 놈이 연애하다 애가 덜컥 들어서서 광산으로 피신 온거나 다름이 없었다. 결혼식도 못 올리고 사글세 방 에서 가재도구 하나 변변치 못한 것이 늘상 아내는 불만이었다.
'애는 날고 커 가는데 언제 돈벌어서 이곳을 뜨노.' 속으로 되뇌이면서도 꺼림직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벌써 버스는 현장에 도착하여, 야간 근무자들이 탈의실에서 웅성거렸다.
"어이 서감독 이리 와 봐 ? 케이빙 막장이 안 좋아!"
박감독은 인사겸 한마디 던지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보안 일지에는 '천반주의' '공동출입 엄금'이라는 글귀가 유달리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침 조회를 5분정도 일찍 하고는 막장꾼들에게 작업장 안전점검을 끝낼 때까지 작업금지를 명하고 갱내로 들여보냈다.

타진용 망치를 움켜쥐고 케이빙 막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배관 위에 걸터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막장은 어때요?" "..."
묵묵부답 말이 없다.
"이종우씨 어제 왜 총무과 경리하고 음성 높이고 싸웠어요?"
"아니 글쎄 차떼고 포떼고 나면 우린 뭘 먹고삽니까?" "뭘 어쨌길래 그래요?"
담배를 꺼내 물며, 모른척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국민연금인가 뭔가, 나한테 상의도 없이 지들 맘대로 다 해버렸시오!"
"내가 알기로는 사업주가 반은 부담한다던데.."
"우리 같은 광산쟁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봉급때 마다 떼어 제끼니,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 나이까지 연금 받아 가면서 살기를 바래요?"
이씨는 목청을 높여 주위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 요란을 떨었다.
사실 나역시 의무적인 가입이라는 말에는 다소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자아자, 그만 하구 막장이나 봅시다."
이씨의 말문을 막고는 막장의 천반을 안전등으로 살폈다. 별 이상한 조짐은 없었다. 벌써 탄은 다 빼먹고 없어서 후퇴는 불가피 하다고 판단했다.
"이씨! 공동내의 철판과 자재도구 걷고 후퇴합시다."
작업의 시작을 명하고 도구를 꺼내려 공동내에 발을 서너발짝 들여놓았을까?

"쾅"

하늘이 무너졌다. 그리고 암흑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황량한 들판에서 길을 잃었다. 허기진 배를 이름 모를 뿔달린 짐승들의 껍데기로 채워 넣었다. 여기가 어딜까?
이내 캡램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영차 영차'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광차에 실렸는가 보다. 끊어질 듯한 허리 의 통증이 엄습해 왔지만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물어왔다.
"서감독! 서감독! 괜찮아요?"
또 다시 정신을 잃었는가 보다. 환환 불빛이 멀리서 시야를 비집고 들어왔다. 갱구가 보이고 보안관리실의 정계장이 보였다.
"서감독? 살았어 괜찮아. 마음 푹 놓아!"
정계장은 내손을 잡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깨어진 유리조각이 시계바늘을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1988년 11월 10일 08시 30분 .'
운명을 바꿔 실은 앰블런스는 어디론가 굉음을 울리며 내달음질 쳤다.
'흉추 12전 요추 1번 척수 손상에 의한 전위 골절로 배변, 배뇨가 불가능하며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고, 향후 평생 개호를 요할 것으로 사료됨'이라는 진단서를 떼어 법원에 제출하였지만 사업주는 폐업을 하였다.
온 집안 식구들이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건만,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기어이 아내는 병원에서 가출을 하고 말았다. 찢어지 는 가슴을 울며 채근하는 3살밖이 딸애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이틀을 지냈다. 창피하고 괴로웠다. 야속하기도 했지만 벌어 놓은 것 하나 없고, 무능력자가 되어 버린 나 자신이 밉고 또 미웠다.
퇴원을 하였다. 술로 나날을 지냈다. 세상이 싫어지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나는 죄인이고 이 고통은 누구의 탓인가?"
죽음만이 최선이다.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어머님에게 화병만 안겨 주었다. 어머님은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네가 살아야만 나도 산다."
또 한번의 죄를 짓고 말았다.
"죽을 각오면, 삶을 구걸하더라도 한번 살아보고 죽자."
어차피 간호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큰 형님 댁에서 형수가 돌보아 주었다. 형수는 적극적이었다.
"도련님 너무 상심하지마! 용기를 좀 내봐? 봄이를 생각해야지! 애를 생각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사는데 까지는 살아야지 ?"
산재치료를 종결하고 보상금으로 2천여만원을 받았다.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장사를 시작한지 석달도 채 안되어 문을 닫아야만 했다. 돈만 까먹은 꼴이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가게에 앉아 있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자꾸 좌절감만 들었다.
그래도 형수는 두둔하고 위로해 주었다.
또 1년이 무위도식으로 지나갔다. 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둘째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국민연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못 타 먹는다고 일러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것 받아봐야 얼마나 된다고 ...
속으로 되뇌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찾아갔다. 다행한 일이었다. 회사가 폐업되기 전까지 모두 완납해 주었는가 보다.
준비해 오라는 서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짜증도 나고 힘도 들었지만 신청을 마무리했다. 산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연금 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담당자가 귀뜸을 해 주었다.
잊고 있었다. 어차피 이젠 한 푼 없는 거지인데 기댈 곳도 없고, 비빌언덕도 없다. 될대로 되라지. 체념한 하루하루로 일관했다 .
취업을 하려고 이력서를 써 들고 찾아갔지만 장애정도가 너무 중증이어서 가는 곳마다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했다. 연락은 어 느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도련님 전화왔어. 국민연금 관리공단이래?"
수급결정이 확정되었다는 통보였다. 다소 의아하고 어리둥절했다.
'잊었는데 ..'
소급 적용해서 400여 만원을 찾고, 이후로는 3개월에 한 번씩 분기별로 30여만원이 나온다고 했다.
빈집에 소가 들어온 셈이다.
곰곰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더 이상 헤프게 쓸 여유가 없다.
우선 딸애와 단둘이서 살기로 결심했다. 마침 영세민 영구임대주택 접수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만류를 했고, 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살다가 힘들면 다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특히 형수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렸다.
168만원을 임대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이사를 했다. 봄이도 전학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그리고 볼일 까지 볼려니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마음을 달랬다.
무엇보다 봄이가 적응을 해 나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효행상도 여러 번 받아 왔다.
평소 소망이었던 척수장애인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다. 14번의 욕창수술, 배변, 배뇨의 물리적 방법, 무지의 소치로 합병증에 시달려온 지난 3년이 너무 허무하고 억울했다.
연금중 남은 2백여만으로 컴퓨터를 샀다. '컴맹'이었고, 척수에 관한 의학적 상식이 전혀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의학 전문서적을 사들이고 빌리고, 진료를 끊어 전문의를 찾아가 사정을 했다. 컴퓨터 책을 구입하여 한달동안 밤낮으로 컴퓨터 를 끼고 살았다. 간신히 워드에 입문했고 책을 쓸 정도는 되었다.

또 다시 욕창이 생기고 요로감염이 괴롭혔다.
어머님은 갑상선에다 골다공증을 안고 퇴원을 하셨다. 또한번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도 활동은 하실 수가 있어서 옆에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지만, 의사들의 도움이 컸다.
원고를 들고 시청 사회과를 찾아가 졸랐다. 뜻밖에 내년에 책을 출판하기로 하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올해 말 까지 완료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추어 발간되었다.
눈을 떠보니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 만하게 실리고, TV뉴스 시간에도 보도되었다.
꿈만 같아 살을 꼬집었다. 온종일 전화가 폭주했다. 매일 매일 책을 보내 달라는 주문전화와 격려의 전화, 상담전화가 빗발치듯 했다.
내 생애 최고의 나날이 지속되었다. 잃었던 웃음을 찾고, 이제 다른 장애인의 표본이 된 것 같았다.
그러길 몇 달, 생계유지가 이슈로 등장했다.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게 웬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과외 신청이 들어왔다. 역시 정성에 맞는 일이고 대학 다닐 때 경험도 조금은 있었다. 수입을 다질 수가 없었지만 보람도 있고, 무엇보다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었다.
실업자가 아닌, 작은 일이나마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흐뭇했다.
척수장애 모임을 설립하고 회장직을 맡았다. 서로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전문의의 강의도 빠지질 않았다. 저명인사도 초빙하여 자문도 구했다.
노동부에 융자신청을 하여 장애인용 통근 승용차를 구입했다. 모든 나들이가 수월해졌다. 분기별 지급되는 장애연금은 할부금으 로 자동이체 시켰다. .
적어도 나에겐 튼튼한 두 발이 되었다. 서울도 가고, 추억의 고향집 툇마루에도 갈 수 있다.

어느날 문득 천사를 만났다. 내게 있어서 그녀의 이름은 분명 천사였다. 업어주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영원한 동반자 약속을 하 였다.
'국민연금', 내게 소리없이 다가온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희망을 열어주고, 잃었던 가정을 다시금 찾아 주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