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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WEBZINE 2013.SUMMER

국민연금을 말한다

제9회 수급자 생활수기 공모전 수상작 웃음이 열리는 연금나무(최◯◯ / 유족연금 수급자 가족) 시어머님은 한평생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에 그을리고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싸워 가면서도 일년 열두달을 한결 같이 가게를 지키시던 분이셨죠. 더구나 장사를 하시는 까닭에 거세고 독하다는 모진말도 듣곤 하셨는데 알고 보면 한없이 여리고 사랑도 주고 받을 줄 아는 ‘평범한 여자’셨습니다.

평소 아버님께서는 온 동네가 알아주는 신사에 인정도 많으시고 살가운 분이셨지만 가장으로서 그리 훌륭하신 분은 아니셨던 듯합니다. 경제관념 이나 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셨거든요. 어머님께서 생계를 꾸리시느라 늘 지쳐 계신 모습이 아버님 탓이라 여겨서 일까요? 아버님은 어머님에게만은 살가운 말 한마디 주질 않는 모진 분이셨습니다.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어머님은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잃으셨습니다.

살가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아들과 남처럼 무뚝뚝한 남편과 무슨 낙으로 한평생을 사셨을까 궁금했던 제가 한번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낙? 내가 그런 호사를 부릴 처지가 되나? 그저 내 새끼 밥 안 굶기고 사는 거 말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시더군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 너무도 불쌍하고 가여운 분이셨습니다. 내 남편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사신 어머님이기에 아버님 대신, 아들들 대신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국민연금에서 돈이 들어왔더라. 너희 아버지한테 받아보는 내 생애 첫 월급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시는 그 순간까지 어머님께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으셨으니 어머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아버님을 떠나보내는 고통의 시간 동안 어머님은 저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더욱더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후 국민연금공단에서 안내문이 나왔습니다. 어머님께서도 모르고 계셨던 일이라 저에게 문의를 해 보라고 하시기에 전화를 했더니 뜻밖에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국민연금에 가입을 하고 계셨는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님 앞으로 유족연금이 나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후 어머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내가 오늘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했는데 국민연금에서 돈이 들어왔더라, 너희 아버지한테 받아보는 내 생애 첫 월급이다” 감정에 북받쳐서 울먹이다가 끝내 오열하시는 어머님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 와 제 마음까지 먹먹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우시던 어머님이 걱정되어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괜찮다. 이제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바보같이 너희 아버지 죽고 나서야 내가 알았다. 살아 생전에 나한테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 선물을 준비 해 놓은걸 보면 평생 고생 시킨 것이 미안하다고 사과 하는 게 아니겠나? 이제라도 그 마음을 알았으니 남은 인생은 행복하게 살란다. 너희 아버지도 그러길 원할 것 같은데, 네 생각도 그러냐?” 어머님께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분명 아버님의 마음이 당신에 대한 사랑이었을 거라고, 애틋한 마음이었을 거라고 믿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분명 예전보다 훨씬 더 밝고 건강함이 묻어났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마지막 선물을 단지 돈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과로 받아들이신 어머님께서는 그 날 이후로 많이 달라지셨습니 다. 후줄근하게 늘어난 아들들의 티셔츠를 벗고 화사한 꽃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으셨고 그동안 배우고 싶어 하셨던 수영과 스포츠 댄스도 배우러 다니셨습니다.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고 흐뭇하던지요. 돈이 입금되는 날이면 어머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오늘도 너희 아버지가 월급을 보내 왔다. 내가 뭘 하면 너희 아버지가 좋아하실까?” 가끔 은 형편이 좋질 않아 용돈마저 챙겨 드리지 못할 때면 죄송한 마음에 고개 숙인 제게 어머님께서는 그렇게 얘길 하십니다.

“ 마음이라도 그렇게 써 주니 고맙다.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월급은 그대론데 물가는 자꾸 오르고 애들은 커가고.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그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냐? 그래도 내겐 물가 오른다고 더 올려주고, 날짜 한번 어기지 않고 꼬 박꼬박 들어오는 국민연금이 있잖니? 아무래도 나 고생시키고 속 썩인 게 미안해서 너희 아버지가 보너스도 주시는가 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겠지만 어머님께는 돈 이상의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돈으로 인해 아버님의 사랑을 찾으신 어머님 께서는 더 활기차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만 해도 큰 복이라고 생각하시는 우리 어머님, 얼마 전엔 매달 들어가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부담이라는 제 투정에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연금을 너희가 주는 용돈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니? 그 돈은 내 용돈, 혹은 우리 손자들을 위한 저축쯤으로 생각하고 넣으렴. 그럼 하나도 아깝지 않을 거야."

이런 어머님의 말씀이 있어 어려운 형편에 매달 보험료를 내는 것이 호락호락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무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넣으려 합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빼곡히 열린 매실나무처럼 미래에는 제가 넣은 국민연금도 주렁주렁 열려서 제 노후의 희망이 되어 주겠지요.